자연으로 삐뚤어진 세상 흩어버리는  김현수 작가의 ‘산바람, 강바람’전



                                                                                                                                                                                                                 -  이동권(기자)


그림이 읽힌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짐작된다. 돈과 무기의 위력을 무너뜨리는 자연의 힘. 경멸하고, 혐오하는 세상이지만 그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건져내려는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김현수 작가의 작품은 세상에 대한 냉랭하고 적연한 시선을 거두게 한다.  세상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치열하게 싸우는 

각축장이다. 세상의 룰은 어쩌면 매우 단순해서,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는 일이 대부분이며, 그것 때문에 싸움도, 살육도, 전쟁도 불사한다. 이런 세

상에 살다보면 자연스레 양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김 작가는 일면 '개차반' 같은 세상에 자연에 내포된 조화의 섭리를 끌어들인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순리를 따르는 삶의 지평이 찾아오길 기대하

면서 꽃과 나비, 강과 바다, 소박하고 한가로운 시골의 일상 등을 포섭해 돈과 무기를 제압한다. 

설득력 있는 구성이다. 실로 자연을 가깝게 하는 사람은 다르다. 한여름 도처에서 소리 없이 무섭게 자라나는 나뭇잎의 힘을 볼 때 놀라움보다는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끼듯, 자연은 겸손과 만족, 인내와 사랑을 인간에게 가르친다. 

김현수 작가는 2003년 첫 개인전을 연 뒤 지금까지 자연을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 이유는 자연과의 특별한 유대감 때문이다. 

김 작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산속에서 보내며 자연과 친밀한 교감을 형성했다. 이후 자라면서, 과도한 자본주의 사회의 

참혹함을 목도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그리움도 가슴에 쌓이면서 휑한 빈자리를 채워줄 유일한 '대체자'를 찾았다. 바로 자연이다.


그는 한적한 숲, 커다란 바위에 앉아 숨이 트기 시작한 자연을 자주 바라봤을 것이다. 별의 궤도를 따라 스스로 고독을 달래고, 스러져가는 무지개

에게 명멸하는 사랑의 참 뜻을 배우며, 몸부림치는 생명의 손길에 뜨거운 열병을 치유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쌓아 올린 불

가사의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때론 꿈을 꾸고, 때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창백한 삶을 달랬을 것이다.

김현수 작가는 "나는 한 개인이 사회화되면서 겪는 무기력하고 긴장된 상태, 즉 거대권력이 된 자본주의와 유년기에 경험한 군사문화가 만든 그림

자들을 자연을 빌어 와 흩어버리고자 한다"며 "인식적 판단이 배제된 자연의 순수한 에너지는 인간의 주관적 감정과 이분법적 사고를 중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밝혔다.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조용하고 침울해 보이는 화면에 바람과 식물의 잔상을 담아내었던 초기작들에서 자연은 일방적인 짝사랑의 대상이었지만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근작들은 자연과의 조심스러운 교제 단계가 심화돼 신나는 놀이의 차원으로 발전된 양상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것은 숭배의 대상으로서 자연의 역할을 놀이의 대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가능했고, 자신의 심리적인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면서 생긴 

자신감의 표출로 보인다"며 "그러면서 침울했던 화면은 생기가 넘치고, 화폐와 탱크 같은 이미지들이 새롭게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게 되고, 세계유

일의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무기로서의 탱크가 식물들의 해학적인 자태로 풍자된 놀이기구로 변신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수 작가의 <산바람, 강바람>전은 오는 18일부터 갤러리도스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은 자기 것을 더 많이 채우는 일에 치중하고, 종국에는 부끄

러움까지 놓아버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색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