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소리, 숲의 호흡


                                                                                                                                                                              고충환(미술평론)



자연을 피시스(physis)와 나투라(natura)로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으로써 캐치할 수 있는 자연의  질료적이고 현상적인

지평을 피시스로 정의하였으며, 단지 인식을 통해서 추정해 볼 수 있는 자연의 원리를 나투라로 보았다. 그리고 이때 나투라  속

에는 완전한 형상인 에이도스(eidos)가 내재돼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자연의 감각적인 실체를 피시스로, 그리고 자연의 관념

적인 실체를 나투라로 각각 정의한 것이다. 이 구분 속에는 자연을 감각하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서 대상화되고 사물화된 객

체로서의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을  매개로 한 주체와 객체, 즉자(卽自)와  대자(對自)와의

관계에로까지 변주된다.


하지만 이는 편의상의 구분에 지나지 않으며, 실상은 상호내포적인 관계로서 연속돼 있는 것이다. 즉 자연의 감각적인 지평 속에

는 완전한 형상에 해당하는 자연의 원리, 자연의 실체, 자연의 원형, 자연성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감각적인 지평 

자체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 곧 자족적인 자연과 연속돼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을 매개로 한 주체와 객체, 즉자와 대자와의 관계

역시 상호 내포적이고 상호 연속적인 것으로서, 원래는 구분될 수 없는 것들을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일 뿐이다. 이는 메를로 퐁티

의 우주적인  살처럼, 자크 라캉의 상상계처럼,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코라(chora)처럼 세계가 주체와 구분되기 이전의 상태를 회

복하고 실현해야 할 당위성으로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구분 속에서의 구분을, 혼돈 속에서의 질서를, 막연함과 더불어 있는 실재를 캐치할 수 있는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암시이고 상기이다. 자연에는 이러한 암시와 상기를 통해서, 언어의 형식으로서는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의 임의적인 

환원을 통해서 비로소 인식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불구의 언어를 통해서만 표상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을 매개로 한 김현수의 그림은 바로 이런 언어의 바깥쪽에 있는 것들을 언어의 안쪽으로 불러들이려는 기획에 맞닿아 있으며, 

자연의 원리를 감각적인 표면 위로 불러내려는 기획에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보이지도, 들리지도, 감각되지도 않는 자연의  원리

(그 자체를 자연의 운동성 혹은 자연의 생리로 이해해도 무방한)를 감각하려는 욕망에 맞닿아 있다.


한편, 엄밀하게 말해서 자연의 원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감각되지도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자연의 원리 중 상당부분은 

감각적으로 캐치될 수 있는 것들이다. 보고자 하는, 듣고자 하는, 감각하고자 하는 절실한  욕망이 있다면 자연은 자기의 원리 중 상

당부분을 감각에게 내어준다. 실제로 짐승과 곤충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 레이더로써 자연의 원리를 캐치하며, 예술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발달된 감각 센서를 갖고 이를 감지한다. 이는 그 자체를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로서 보기보다는 절실한 욕망과  열

려진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암시해주는 것이 심안(心眼)이고 개안(開眼)이다. 즉 보통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눈은 자연의 감각적인 실체를 투과해서

 그 이면의 관념적인 실체에까지 미치며, 자연의 전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처럼 자연이 온전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비록 순간이지만, 이때의 순간 속에는 현재진행형의 과정과 지속적인 형태, 시간의 결과

 층이 함축돼 있다. 시간을 통과해온 결과물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시간의 결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간의 결과 

주체의 결이 서로를 향해 열려지며 동화되는 것이다. 김현수의 그림은 이처럼 시간을 매개로 해서 주체가 자연과 동화되는  순간(사

건)을 드러내며,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이를 추체험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김현수의 그림이 재현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연을 감각적인 기호로서 환원한다. 즉 올이 가늘고 섬세한 그 이면이

비쳐 보이는 반(半)투명한 실크 위에다 펜으로 드로잉을 한 것이다. 이때 나무나 숲과 같은  자연의 대상이 드러나 보이도록 가장자리

선을 따라서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이를 그려 넣는다. 대상 자체를 가장자리 선만으로 환원한 이 그림은 선과 선,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서로 보이지 않는 내적 긴장감으로 연결돼 있으며, 이로써 일종의 사이 공간을 드러낸다. 이는 마치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여백을 시적(詩的)인 형식으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더불어 자연의 원리를 상기시켜주는 암시를 위한 계기로서 작용한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은 단순한 드로잉 혹은 선 그림으로 부르기가 주저될 만큼 수공성이 강하면서도 시적인 암시마저 함축하고 있다. 

일면적으론 자수 혹은 수예를 연상시킬 만큼 섬세하며, 또한 밀도감이 강하다. 여기서 김현수의 그림이 함축하고 있는 시적인 암시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표면 위로 끌어내려는,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형상화하려는 욕망과 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도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서 나타난다. 즉 자연은 자연을 이루는 성분이나 요소들이 고립돼 있는 단독자의 형태

이기보다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연결돼 있으며,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다만 암시적일 뿐인 소리(예컨대 내면의 소리와 같은)

와 연결돼 있다. 

나무는 바람과 연결돼 있고, 공기와 연속돼 있다. 숲은 어둠과 연결돼 있고, 빛과 연속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화, 설화, 우화, 전설 

등의 온갖 서사에 연장돼 있는 것이다.


 자연에 내재된 관계는 자연을 일종의 겹 구조로써 드러낸다. 이러한 겹 구조를 작가는 실크 천에 그린 그림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중첩

시키는 방법으로써 실현해 보인다. 실크 천 자체의 반투명한 성질이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는 표면의 이미지와 이면의 이미지를 겹

쳐 보이게 한다. 자연의 레이어, 자연의 중층구조를 드러내 보이는 그림 속 이미지들은 마치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

며, 이런 동세가 자연이 함축하고 있는 시간의 결을 상기시켜준다. 그럼으로써 자연을 현재진행형의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경험할 수 있

게 해준다. 이런 빛에 대한 반응이나 동세의 표현,  그리고 시간의 결에 대한 암시는 실크 천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즉 중

첩된 이미지가 자연의 겹구조를 드러내며, 여기에 덧붙여 시간의 결과 시간의 주름이 실크라는 소재에 의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섬세하게 조합되고 일체화된 형태로서 나타나고, 그 자체로서 자연의 온전한 전체를 드러낸다. 지속적인 시간의 장 속에서의 자연의 역

동적인 전체를 드러내 보인다.


김현수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를 청한다(Can you hear it? 2003). 그 소리는 실상 자연으로부터 나에게로 되돌려진 소리, 자연

에 이입된 나의 소리, 자연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소리, 자연에게서 내가 상실한 원형을 되찾고 치유받고 싶은 소리다. 그리고 작가는 자

연의 호흡을 느껴보기를 청한다(한 호흡의 걸음 2005). 그 호흡은 자연과 내가 연결돼 있음을, 자연과 내가 유기적으로 연속돼 있음을 말

해준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경사는 작가의 그림이 가시적인  실체로서 드러난 자연보다는 비가시적이고 암시적인 형태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자연의 원리에 그 맥이 닿아 있음을 말해준다.


이로써 김현수의 숲 그림은 실제의 대지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숲과, 관념이 그려낸 숲의 이미지 사이에 위치한다. 

그 사이 만큼의 여백과 더불어 숲은 마치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아득하여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시상(詩想)을 불러일으킨다. 실

재의 흔적, 실재의 그림자, 실재의 잔상, 신기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 그림 속에서는 나무가 낙엽을 벗는 소리가 들리고, 숲이 어둠을 끌어안

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